나의 아버지는 6순이 채 되시기 전에 돌아가셨다.
10여년 동안 간경화증을 앓고 계셨는데
그랜드캐년에 여행가셨다가 어린 아이에게서 옮은
치킨팍스 균이 혈액 속으로 들어가
병원에 입원하신지 열흘만에 돌아가셨다.
입원해서 3일째 되는 날, 닥터가 병실에 와서는
'수술 성공률은 30% 미만이고 성공을 해도
간경화증이 있어서 희망적은 아니다'고 하며
그래도 수술을 원하는지 가족에게 물었다.
그 때, 산소마스크를 의지하여 힘겹게 호흡하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그 말을 들으셨는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수술을 거부하셨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따랐고, 곧 간호원이 와서
산소마스크와 심장측정기, 포도당 주사만을 남겨두고
주렁주렁 매달렸던 줄들을 모두다 뽑았다.
그때부터는 죽음만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두려우셨을까?
돌아가실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헉 ’하고 막혔다.
나는 죽음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나님, 어떡해요?’
그러던 어느날 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병실에 앉아
아버지와 심장박동기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박동기의 그래프가
‘지--- 하고 소리를 내면서 수평선을 그었다.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고통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 놀랍도록 환하게 바뀌어졌고
또 하나의 아버지가 몸을 일으켜 빠져나와서는
당신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씨익 웃으셨다.
'지긋지긋한 육체! 이젠 끝이다.' 하는 듯..
고통에서 해방되어 너무나 행복한 모습이었다.
침대 양 옆에 하얀 날개 달린 두 천사가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곧 뒤를 돌아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순간 나는 큰 소리로 다급하게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는 뒤도 안 돌아보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내게는 전혀 관심도 없는 듯이 눈길 한번 안주시고
미련도 없이 사라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코 앞에 있는 사랑하는 딸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도 잊을 정도로
그렇게 빨리 가고 싶으셨을까..?
꿈에서 깨어나서 나는 섭섭한 마음보다는 오히려
아버지의 행복한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기뻤다.
꿈 이야기를 전해들은 식구들도 모두
아버지께서 천국에 가실 것을 확신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아버지께서 숨을 거두셨는데..
고통으로 심하게 일그러졌던 아버지의 얼굴이 정말로
꿈 속에서 본 것과 똑같이 환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천국으로 가셨고 이 세상에 안계신데..
빈 껍데기 시신은 더이상 아버지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육체는 단지 벗어두고 간 옷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다고 생각되었다.
벗어두고 간 시신을 붙들고 슬퍼 할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를 천국으로 보내드리고 우리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까지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놀라웠다.
이 세상은 잠깐동안 지나가는 것
다음 세상을 위해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
죽음 자체는 조금 빨리 천국에 가는 것뿐이다
가족들도 잠깐이면 천국에서 만난다
- 인세반 선교사
얼마동안 우리는 잠시 서로 다른 세계에 떨어져 사는 것일뿐..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이 생겨나며 기뻤다.
1992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