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크고 좋은 집으로 이사

Grace Woo 2015. 12. 23. 00:07

 

 

뉴저지에서 처음 우리가 살던 집은 평범한 3 Bedroom House였다.

그 집 지하실에서 남편은 비지니스를 시작했고

얼마 후에는 뒷편에 있는 porch에 온냉방 씨스템을 넣고

스튜디오로 개조해서 한동안 사무실로 사용했다.

회사가 사무실을 얻어서 나간 뒤에는 그 스튜디오에

침대 셋트와 소파세트를 사넣고 예쁘게 Guest room으로 꾸몄다.

그 집에서 제일 크고 좋은 방이다.

전에 선교사님 한분이 호텔비가 아깝다고 예배당 의자에서

주무셨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었는데..

그 방을 선교사님들을 위한 숙소로 사용하고 싶었다.

 

과테말라에 공장을 세우고 난 뒤, 남편은 우리도

큰 집으로 이사하자고 했지만 나는 그 집에서 살기를 고집했었다.

큰 집에 사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 여름 매우 무더운 날이었다,

우리 집에서 구역모임이 있어서 삼계탕을 끓였는데,

집안은 온통 찜통 같아졌고 에어컨 온도를 아무리 낮추어도

도무지 시원해지지를 않았다.  그날따라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몇명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았다.

더위에 지친 나는 계단에 앉아서 빽빽하게 앉은 사람들을 내려 보다가

'구지 좁은 공간에서 불편하게 예배드리는 것을 고집하는 것도 아집이다'

'효율적인 모임을 위해서 넓은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나눔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넓은 집으로 이사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러나, 남편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좋은 집들만

보고 다녀서 나와는 의견이 맞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나고, 

Green Brook 산등성이에 새로 들어선 저택 단지가 세일을 마감하면서

모델하우스가 10만불 이상 가격을 낮추어 리스트에 나온 것을 보고

결국 나는 많이 양보해서 그 집을 사기로 동의했다.

 

그런데, 집을 계약하자마자 갑자기 회사에 생산주문이 끊기는 위기가 닥쳤다.

예상치 못한 일에 회사는 비상사태가 되었다.

큰 집으로 이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 같아 회개를 믾이 했다.

 

동업자는 뉴저지의 럭서리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과테말라를 왕래했었는데,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은 호텔에서 지내기로 하고 아파트를 정리하기로 했다.

우리는 계약금을 잃지 않고 집이 해약되기만을 기도했다.

 

그렇게 숨막히는 몇달이 지나가고

회사에 주문이 다시 쏟아져 들어와 공장은 정상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몰게지가 나와서 등떠밀리는 기분으로 이사를 했다.

'그래.. 한번 봐 주마.' 하시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

 

넓은 집에 가구를 채우려면 큰 돈이 들어가야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거의가 다 해결되었다.

 

동업자가 아파트를 정리하면서 갈 곳 없던 고급 가구들이 모두 우리집으로 왔다.

베드룸에 있던 king bedroom set는 우리집 master bedroom으로

거실에 있던 소파셋트는 우리집 family room으로,

사무실에 있던 책상 셋트는 현관 옆 office room으로

때를 정확히 맞춰서 모두 옮겨져 왔다.

 

우리가 살던 집의 가구들과 Guest room에 새로 장만한

침대셋트, 소파세트도 각각 제자리를 찾아갔다.

 

모델하우스의 고급 커텐들은 그대로 포함되어 왔고

벽에 걸린 고급 액자들은 그들이 가져가기로 했었는데,

클로징 당일날에 전화가 왔다. '그냥 두고 가도 되느냐'고...

당연히 그러라고 했다.

궁금해서 액자를 떼어 보니까 액자를 고정시키기 위해

벽에 붙였던 스티커들이 찢어지면서 페인트를 다시 칠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클로징 당일이라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집에 걸맞는 고급 가구들과 물품들이 거의다 거저 주어진 것이다.

또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Dinning room에 놓을 큰 식탁이 필요했다.

의자들은 전에 세일할 때 사놓은 것이 있어서 식탁만 필요했다.

 

'절대로 사치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딸 Hanna와 함께 가구점들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10인용 식탁이 장난 아니게 비쌌다.

지쳐서 나오는데 Sale 딱지가 붙은 식탁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티크색 식탁이 먼저 장만한 마호가니 색의 의자와는 전혀 맞지가 않았다.

그래도 다른 것들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싼 가격이 맘에 들어서 한참 망설이다가

'어차피 식탁보를 씌우면 보이지 않을텐데 뭐... ' 하고 그냥 사버렸다

공장에서 주문 생산하기 때문에 2주는 지나야 배달한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잘못 산 것 같아 후회를 많이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색이 너무 옅어서 영 아니다 싶었다.

물감의 속성은 겹겹이 칠할수록 검게 짙어지는 성향이 있는데

실수로 거듭거듭 칠해져서 색상 차이가 조금만 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주 후에 배달이 왔는데....

진짜 말도 안되게 색이 짙어져서 의자와 같은 색상의 식탁이 왔다.

본래의 샘플 색상을 원했더라면 영락없는 반품감이다.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옆에서 지켜 본 Hanna가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엄마- 이거.... 하나님이 하신거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소름끼치도록 느꼈다.

앞으로 부유한 생활 속에서도 사치나 낭비는 하지 말라는 메세지로 받았다.

 

첨부이미지

 

Green Brook 산등성이에 위치한 크고 좋은 집에서

우리는 한동안 과분한 부를 누리고 살았다.

 

 

 

지하실 밖은 ground level 이고, 경치가 좋다

여기에서 각종 모임들을 많이 가졌다.

 

'하나임교회' 개척 당시에는 매 주 30여명이

한동안 여기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소파를 한쪽으로 밀고, 접는 의자들을 줄맞춰 놓아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Guest Room

 

다일공동체의 최일도 목사님은 뉴저지 집회에 오시면

교회들이 제공하는 호탤들을 마다하시고, 구지

중부의 우리 집까지 내려오셔서 머물곤 하셨다.

선교사님들도 연예인들도 여러 분이 다녀가셨다.

 

       Breakfast Room

 

       Dinning Room

 

       Living Room

 

       Family Room

 

 

       Florida Room,

창밖에는 온통 푸르른 나무 숲이고  싱싱한 냄새가 물씬 느껴진다.

 

 

뒷마당은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이어진다.

폐수술 한 이후로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환경이다.

그 때는 신선한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공기 좋은 숲속에 살면서 문들을 꼭꼭 닫고 지냈다. ㅋ~

 

       Master Bedroom.

겨울에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해돋이가 끝내준다.

사진을 찍었는데 생생한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아서

그림으로 담아 보았는데...  역시 어림도 없다.

허전해서 태양을 그려 넣어보니 석양이 되버리고.. ㅋ~

 

 

 

해마다 집 앞에 X-mas decoration은 내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