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의 할아버지는 순교자셨다

Grace Woo 2015. 12. 1. 20:56

 

1981년, 미국으로 이민와서 뉴욕 Flushing에 살고 있을 때다.

나의 할아버지께서 개척하신 교회의 교인이셨던 한 분을

아버지께서 우연히 길에서 만나 집으로 모시고 왔다

워싱톤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던  한희택 목사님이셨다.

목회자 세미나에 오셨다가 놀랍게도 길에서 만난 것이다.

 

8.15 해방 후, 안수 목사님이 별로 없던 시대에 나의 할아버지는

평양 어느 마을에서 교회를 개척하시고 말씀을 전하시는 장로님이셨는데

대쪽같은 신앙을 지니신 분이셨다는 것이 내가 아버지께 들은 전부였다.

 

그런데, 한목사님을 통해서 할아버지께서 순교하셨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6.25 동란이 일어나기 얼마 전에 할아버지께서는

작은 배를 한척 빌리셔서 자녀들과 교인들을 태워 월남시키시고

정작 당신은 남은 교인들과 함께 교회를 지키시다가

감옥에 끌려가셔서 순교를 당하셨다는 것이다.

 

한목사님께서 아버지 형제들의 안부를 두루 물으시다가

"그 교회를 다녔던 나도 지금 목사가 되어 있는데,

순교자의 자녀들 중에 목사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니 어쩐일이요?"

하시며 거듭 반복해서 물으셨다.

 

첫째 큰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그 옛날을 회상하시며 큰아버지의 이야기도 들려 주셨다.

큰어머니는 모 중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의 따님이었는데

그당시 두 인텔리가 연애한다고 온 동네가 부러워하며 주목했었다고 한다.

그런 큰아버지 부부께서 월남하신 후로 고생을 제일 많이 하셨다.

 

큰아버지(신랑) 뒷편에 한복 입으신 분이 김규희 할아버지시다

 

1960년대 말에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두 분은 일찍 다 돌아가셨다.

그당시 어려웠던 시절 탓인지 고아가 된 세 자녀를 거두는 친척이 없었다.

 

얼마 후, 사촌 언니가 호스티스로 술집에서 일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어느날, 집안이 망해서 대학을 중퇴할 형편에 놓인 한 청년이

절망하여 술집을 찾았는데, 그때 언니가 학비를 대줘서

무사히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집에서는 결혼을 무척 반대했지만 그는 언니를 배신하지 않았다.

70년대 초에 세운상가에서 가전제품 사업을 시작한 형부가 자랑스러워서

가끔씩 찾아갈 때마다 용돈을 주셨던 기억이 나며 감사하다.

친척들이 돌보지 않은 고아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음을 느낀다

 

넷째 큰어머니는 두 아들이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큰아버지께서 재혼을 하셨지만 몇년 후에 큰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하마터면 고아가 될 뻔했던 초, 중학생의 어린 두 아들을

새어머니께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명문대학을 졸업시키시며 친자식처럼 키워내셨다.

또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느꼈다.

 

'순교자의 자녀들에 대한 축복이 따로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할아버지께서 순교 당하셨는데,

자녀된 우리들이 대신 축복을 누리는 것 같다.

 

순교자의 자손인 것이 자랑스럽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더욱 자랑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