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과테말라 선교를 다녀와서

Grace Woo 2015. 12. 26. 00:30

 

선교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이 한결같이

'누구나 꼭 한번은 선교지를 가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선교지의 열약한 환경에 적응할 자신이 없어서

'물질로 도우면 된다'고 스스로 변명을 해왔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과테말라 치섹을 단기선교지로

정했을 때만큼은 피할 수 없는 부담감으로 짓눌렸다.

 

나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다가,

4박 5일 중에서 가고 오는 날을 빼면 고작 3일인데,

현지 음식을 도저히 못 먹겠으면 하루 한끼는 금식하고

간식 종 챙겨가면 까짓거 못 갈 것도 없겠다 싶어서

생각을 바꾸고나니까 마음이 좀 편해졌다.

 

드디어, 과테말라 공항에 도착해서 Van으로 갈아 타고

대여섯 시간 걸린다는 치섹을 향해 떠났는데,

가다가 보니 어두컴컴해져서 울퉁불퉁한 시골 길을 차가 달리지 못해

예정시간보다 2시간이 늦어진 저녁 8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뉴저지는 2시간의 시차가 있으므로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다.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밤잠도 설쳤고 새벽 4시에 일어났는데...

그냥 씻고 잤으면 딱 좋겠는데..

짐도 내리지 못한 채 우리는 곧바로 성전으로 안내되어 갔다.

500여명이 서너 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성전은 어설프게 지어졌지만 생각보다 꽤 컸다.

작은 시골마을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대부분이 구경 온 사람들처럼 보였는데,

그들의 얼굴은 호기심도 반가운 기색도 없는

그저 무덤덤한 표정들이라 뜻밖이었다.

 

앞에서 인도하는 찬양소리가 스피커를 쩌렁쩌렁

귀가 따갑도록 울리면서 한시간도 더 계속했다.

열대기후에다가 사람들이 꽉 들어찬 열기로

땀 범벅이 되어 옷이 흠뻑 젖었다.

예배시간은 또 왜 그렇게 긴지... 

점점 짜증스러워지면서 나는

나의 인내를 테스트하며 앉아 있어야 했다.

 

3시간 정도의 긴 예배를 마치고

드디어 모텔로 안내되어 갔는데,

수세식 화장실과 작지만 샤워실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런데.. 더운물이 나오지를 않았다.

무더운 날씨와는 걸맞지 않게 지하수가 얼음짱처럼 차가왔다.

손바닥에 물을 받아서 냉기를 뺀 뒤에

몸에 발라 간신히 땀만 닦아내는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 의료팀을 돕기 위해 보건소로 갔다.

보건소 밖에는 이미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와 있었다.

그 곳 사람들은 아프면 보건소에 와서 약을 타간다는데

약창고에 약이라곤 없고 빈 선반들만 덩그러니 있었다.

위급한 환자들은 도시의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는데

대부분 돈이 없어서 그냥 그대로 죽어간다고 했다.

생전 처음 만나는 무료진료가 그들에겐 놓칠수 없는 기회였던 것이다.

 

진료는 Spanish와 현지어로 이중 통역을 하기 때문에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받을수 있는 환자들이 한계가 있어서 티켓을 나누어 주고는

티켓이 없는 사람들은 돌아가라고 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돌아가지 않았고

저녁 끝날 때까지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가지고 간 약들은 거기에 필요한 약과 거리가 먼 것들이 많았다.

당뇨병, 고혈압은 가난한 나라와는 상관없는 것을 모르고

쓸데없는 약들을 잘못 가져왔다고 의사 집사님이 몹시 안타까워 하셨다.

약이 떨어져서 비슷한 항생제로 대신 주다가

항생제마저 떨어져서 진통제나 영양제를 주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약만 먹으면 곧 나을 것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두 손으로 약병을 받아들어 가슴에 꼬옥 대고는

신뢰와 감사의 눈빛을 보내며 문을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전날 밤의 짜증스러웠던 마음이 부끄러웠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어쩌다 그들은

가난한 나라에, 그것도 아주 열약한 오지에 태어나서

인간의 기본권리 마저도 누리지 못하고

그 삶이 전부인양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걸까..?

 

굶주리며 흙바닥에서 맨발로 생활하는 그들을 보니

우리의 고난들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미국에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복 받은 사람들이다.

 

장시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그런 외진 곳은

선교사들 조차도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 곳이야말로 작은 손길에도 큰 도움이 될텐데..

그들을 외면하는 것은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팀이 보건소에서 봉사하고 있는 시간에 성전에서는

아이들에게 현지어로 번역한 영화 '예수님의 생애'를 보여주고 있었다.

비데오를 찍기 위해서 선교사님의 안내로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아이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는데, 

저멀리 강대상 밑에 조그만 TV 한 대가 형광빛만 발하고 있을 뿐

영상은 보이지도 않았고 스피커에서 소리만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생전 처음 TV를 구경하는 아이들은 모두

쥐죽은듯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가는 무렵에 갑자기 성전이 떠나갈 듯 아이들이

큰 함성을 지르며 박수 소리가 끊어질 줄을 몰랐다.

곧 '할렐루야' 찬양이 성전 가득히 울려퍼졌고

이어서 현지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하셨다.

 

콜링 시간에는 앞에 앉은 50-60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앞으로 나아가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대형 스크린으로 영화를 제대로 보여 주었더라면,

뒤에 앉은 아이들도 많이 결신을 했을텐데.... 

몹시 아쉬웠다.

 

저녁 집회 때 나는 벽쪽 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간격이 비좁아서 매우 불편헸는데 그 틈바구니 사이로

꼬마 여자아이 하나가 벽에 달라붙어 서있어서 더욱 갑갑했다

그런데 얼마쯤 후에 그 아이가 갑자기 내 팔을 툭툭 건드렸다.

쳐다보니, 아이가 방긋 웃으며 아는 척을 했다.

그래서 나도 싱긋 웃어 주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현지어의 찬양소리를 들으며 계속 앉아 있는데

또다시 그 아이가 내 팔을 쿡쿡 찔러서 쳐다보니

아이가 찬양에 맞춰서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손뼉을 치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었다.

나더러도 손뻑을 치라고 하는것 같아서

박자에 맞춰 손뼉치며 다시 그 아이를 쳐다보니

아이의 환한 얼굴에서 기쁨과 사랑이 넘쳐 보였다.

순간 나는 “아하- 이 아이가 낮에 영화를 보고

은혜를 받은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며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들의 얼굴에서 기쁨이 넘쳐나고 있었다.

희망이라곤 하나도 없어보이던 첫날밤의 무덤덤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모두들 기쁜 얼굴로 힘차게 박수를 치며 행복해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처음부터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굶주림으로 기쁨도 희망도 잃어버린 그들이,

선교팀의 작은 나눔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만나고

생명의 기쁨을 회복한 것이다.

그들에게서 사랑의 꽃이 피어났다.

잃어버렸던 표정들이 살아났다.

그들의 변한 모습을 보고 또 가슴이 뭉클했다.

 

아직도 손길이 닿지 않는 곳곳에 굶주린 영혼들이 많은데

그들을 모른척 한다면  '죄'라는 생각이 또다시 들었다.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36~38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비젼으로 설레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은혜와 도움을 주려고 선교지를 갔는데 내가 은혜를 받고 돌아왔다.